연지책방 방문기
이름: 연지책방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178
종류: 독립서점
느낌: 화사하고 깔끔함
* 당일 쓴 글을 옮겨 적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밤새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가 새벽 3시 경이 되고나서야 잠든 나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침대에서도 일찍 빠져나올 생각은 없었다. 침대에 누워 내 주변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밤새 색다른 일이 있진 않았나 관심을 가지며 여유롭게 침대에 더 누워있었다.
오늘은 전남대 북문 쪽에 있는 '연지책방'에 들릴 생각이었다. 개점이 오후 1시라니. 일찍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기왕 시간이 늦어진 김에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기로 했고, 글을 조금 끄적거리고 써야할 서류 몇 장을 뒤적거리다가 점심을 챙겨먹고 개점시간인 1시에 방을 나섰다.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첨단 23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만 잘 보내면 되는 길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용봉중' 정류장에서 내려 10분 정도를 더 걸어가면 되었는데, 가는 길에 선선한 가을 날씨는 어디가고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찔러댔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은행 열매 들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이겨져 코를 찌르는 냄새를 뿜어대고 있었다. 덕분에 정류장에서 내린 직후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기분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반절 쯤 길을 갔을 때, 호남 고속도로의 밑을 지나는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그 근처에는 호남 고속도로를 따라 숲길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리 넓지 않지만 잘 가꿔져있었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도 꽤나 오랫동안 광주에서 지내왔었는데, 여태 이런 길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광주에 대해 아직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숲길 밑에서 조금 쉬다가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도로변에 있는 목적지를 발견했다. 가게의 빨간 외견은 마치 나에게 '여기에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도착한 책방은 조용하고 아기자기했다. 잘 정돈된 책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그곳에는 독립출판물을 찾아다니며 보았던, 익숙한 책들도, 처음 보는 책들도, 한 번쯤 읽고 싶었던 책들도 있었다. 덕분에 오늘도 책을 고르는 즐거움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책방의 한 쪽 벽면에는 '사진촬영 가능'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는데, 오는 길에 혼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을 생각에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반가운 글귀였다.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 본 사람이 어지간히 많았나 싶기도 했다.
책을 보고 또 보면서 많은 책들 중에 신중하게 두 권을 골라 들었다. 한 권은 전에 구입했던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의 제작자 중 한 분이신 김종완 작가님의 소설집 『택시를 잡는 여자』였고, 다른 한권은 돌아다니면서 계속 눈에 들어오던 남근영 시인님의 시집 『무단투기』였다. 책을 먼저 구입하면서 든 생각은, 나도 참 한 번 눈에 들어온 책들은 어지간히 가지고 싶어하는구나, 였다. 정말로, 한 번 뇌리에 남은 책은 나중이라도 구입하게 되는 것 같았다.
책과 함께 테이블에 앉고서야 책방의 세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구석구석 참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들어 차 있었다. 책이나 관련 굿즈를 상품으로한 천원 짜리 뽑기가 추억을 자극했고, 폴라로이드 인화를 해주고 있어서 누군가와 같이 온다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안 쪽에 자리한 '느린 편지'는 말 그대로 '느린' 편지였다. 편지를 보내고 1년 뒤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1년 후에 받아볼 사람을 기대하면서 쓰는 편지도 낭만적일 것이다. 책방 한 쪽 구석에 위치한 골방 쉼터는 사람 한 명, 많아야 두 명 정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나는 차마 들어가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들어간다면 다락방에 앉아 책을 읽는 느낌이 들 것 같은 공간이었다.
구석 구석 잘 꾸며진 책방을 구경하면서, 나는 책상에 앉아 『택시를 잡는 여자』를 읽어내려갔다. 삶에 지쳐 모든 것에 무덤덤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그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책방의 분위기를 즐기다 해가 지기 전에 책방 밖으로 나왔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와 서로에게 '느린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7. 09. 26